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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한국 거품 문화의 상징, 신의 물방울
    와인이야기(잡록) 2009. 2. 1. 19:35
    `신의 물방울`의 인기는 한국인의 일본 콤플렉스 탓?
    [2040 와인토크]② `신의 물방울`은 왜 `한국의 거품`이 되었나?


    2040 와인토크 1회에서 명사 와인을 놓고 20대 기자한테 융단 폭격을 당한 와인 애호가 김방희씨(43ㆍKBS 1라디오 ‘김방희, 조수빈의 시사플러스’ 진행자). 그가 기회를 잡았다. 요즘 20대는 ‘신의 물방울’을 통해 와인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이 일본산 와인 만화는 이 세대의 바이블 격이다. 와인 경력자는 이 점이 못마땅했던가 보다. 와인을 앞에 두고 ‘신의 물방울’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해 기자와 격론을 벌였다.

    와인의 힘을 빌린 전혀 다른 두 세대간의 격돌, 이름 하여 '2040 와인토크'. 이번에 20대 초보자가 고른 와인은 스페인의 대표적 와인 생산지인 리오하의 캄포 비에호 리제르바 1999년산. 와인바에서 5만원 가량에 마실 수 있고, 대형 마트에서는 2만원 안팎에서 살 수 있는 대중적 와인이다.

    이여영: 지난 번 명품 와인에 비해 손색없죠? 향기도 독특하고, 맛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김방희: 예. 좋아요. 와인 자체로도 좋지만 음식과도 잘 어울려요. 약간 가벼운 와인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만나면 더 환상적이죠. 사실 스페인 와인은 그 맛과 생산량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러나 현재 스페인은 포도 생산면적 면에서는 세계 최대이고, 와인 시장점유율 면에서도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

    이: 국내에서는 와인 후발주자라서 그런지 아직 유명세를 못 타고 있고, 가격도 싼 편이더군요.

    김: 그렇긴 합니다만, 스페인 와인은 긴 전통을 자랑합니다. 19세기 프랑스에 피록세라라는 포도뿌리 진딧물이 창궐하면서, 프랑스 와인 제조업자들이 스페인으로 옮겨가 본격적으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하는데요. 그 가운데서 중북부의 리오하(Rioja) 지역이 대표적인 생산지죠. (와인 라벨을 가리키며) 이곳 와인에만 최고급이라는 DOC 등급을 표기해놓고 있죠.

    이: 사실 오늘은 스페인 와인이 아니라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까 이 가게에도 제가 주문할 만한 와인은 없네요(서울 신문로 역사박물관 앞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베니니. 이 식당의 소믈리에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이 몇 종 있었지만 품절되고, 저렴한 것은 딱 한 종류만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와인의 가격이 14만원대인 것을 알고 이내 주문을 포기했다).

    김: 저도 ‘신의 물방울’을 몇 권 읽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을 다 정독한 게 아니라서 그런데, 스페인 와인은 그 만화에 나오지 않나요?

    이: 비교적 꼼꼼히 들여다본 편인데. 스페인 와인은 거의 없더군요.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이 주역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김: 그냥 보르도 와인이 아니라 주로 보르도 특급 와인이던데요.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빈티지도 많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20대가 접하기는 힘든 와인들이죠. 주로 그런 와인을 소개한 만화인데, 왜 그렇게 20대들이 열광하죠?

    이: 그건 이 만화가 와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심어줬기 때문일 겁니다. 유명 와인에 대한 소개나 평가에 적절한 이야기가 결합해서 한편 한편이 근사한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이 만화를 보고 나면 와인처럼 생생하고 다양한 기호품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죠.

    김: 그래서 20대들이 한 달치 월급을 톡톡 털어서라도 값비싼 와인을 사 마시는 건가요? (웃음) 사실 와인만큼 스토리나 레전드(legend: 전설ㆍ신화)를 동원해 마케팅을 펼치는 상품은 없을 겁니다. ‘신의 물방울’은 그걸 잘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의 전설이 됐더군요.

    이: 그래서 그런지 요즘 와인 바에 가서 와인 리스트를 보면 ‘신의 물방울’에 등장한 와인에 별표를 해두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것만으로 판매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이 만화의 저자인 아기 타다시 남매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와인 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죠.

    김: 저는 이미 그런 일이 현실화 됐다고 보는데요(베니니의 소믈리에도 일전에 가게에 들렀던 타다시의 언행이 좀 거들먹거리는 투였다고 거들었다). 20대들이 와인의 바이블로 생각하는 ‘신의 물방울’의 가장 큰 문제는 주로 비싼 와인만을 극찬해놓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르도 5대 샤토 와인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데 몇 권인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실제로 그런 와인들이 좋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김: 물론 좋은 와인들이죠. 그러나 포르쉐나 페라리, 람보르기니가 명차라는 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훨씬 더 싸지만 좋은 차들도 많습니다. 렉서스라든가 현대차라든가. 각 차마다 다양한 매력이 있는 거죠. 그런데 포르쉐가 아니면 차도 아니라는 식은 곤란하죠. 또 ‘신의 물방울’을 보면 유명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그림 같은 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는 설정도 좀 유치하더군요. 누구든 포르쉐만 타면 다 그림이 됩니까?

    이: 20대처럼 흥분하시네요(웃음). 하지만 ‘신의 물방울’ 3~4 권에서는 3천엔대 이하의 싸지만 맛있는 와인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칸자키는 이런 대사도 합니다. “등급이나 지명도로 와인을 고르는 녀석은 정말 와인을 좋아하는 게 아니죠.”

    김: 아, 그건 저도 봤습니다만, 억지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이 강하구요. 또 그 주인공이 고른 싼 와인 역시 대부분 보르도의 이름난 와인 메이커들에 집중돼 있죠. 또 그 글 후기를 ‘중앙 SUNDAY’칼럼에서 읽었는데요. 값싼 와인들을 왕창 사들여서 조금씩 맛만 보고 다 배수구에 버렸다는 겁니다. 역시 이름난 와인이 진짜 와인이라는 식이예요. 그러고 보니까 ‘신의 물방울’ 거품에는 중앙일보도 일조하고 있네요.

    이: (일순간 당혹스러웠지만, 곧 반격에 나서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만화가 와인의 대중화에 일조하는 건 사실 아닙니까?

    김: 그건 대중화의 정의가 뭐냐에 달려 있죠. 대중들에게 와인을 더 많이 알린 공은 있지만, 대중들이 와인을 더 즐겨 마시게 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비싼 와인만 찾아 마시겠습니까?

    이: 스토리 전개상 유명세를 타는 비싼 와인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꼭 비싼 와인만 훌륭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이 만화 곳곳에서 전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만화를 보면서 와인에 대한 상식과 교양을 넓힐 수 있다는 점과 와인을 통해서 사람과 삶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다는 거 아닌가 싶어요.

    김: 그런 장점은 있겠죠. 그러나 일본 만화답게 와인에 대한 상식과 교양은 깊을지 몰라도,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는 좀 피상적이 아닌가 하는 거죠. 좀 엉뚱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저는 ‘신의 물방울’을 보면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일본 사람들, 서양사나 서양 문화에 대해 서양 사람들보다 더 해박하게 써서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일본 특유의 유미주의나 집단주의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욕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는 극찬을 아끼지 않아요. 이런 대목이 샤토 무통 로칠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아기 타다시와 비슷해요. ‘신의 물방울’에서는 이 와인이 1976년 ‘파리의 심판’(1976년 파리에서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맞대결이 펼쳐졌는데, 예상과 달리 캘리포니아 와인이 압승했다)에서 와인 신생국인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에 패배한 사실은 담지 않고 있죠.

    이: 그렇긴 하지만 ‘신의 물방울’이라는 와인 관련 교양 만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본의 저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교양 만화의 천국인데요, 우리도 ‘식객’ 같은 만화가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은 일본을 따라잡기는 역부족 아닌가 싶어요.

    김: 교양 만화의 기반과 관련해서는 동감입니다만, 교양 만화의 컨텐츠 면에서 일본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에요. 좀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신의 물방울’이 국내에서 누리는 인기나 거품은 일본인의 서양 콤플렉스에 더해 우리나라의 일본 콤플렉스 때문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존의 상식과 정보를 우리 나름으로 재가공해 만들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 갑자기 만화 시장으로 화제가 옮아갔지만, 요는 ‘신의 물방울’이 와인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린 것도 사실이지만, 이 만화가 너무 인기를 끌면서 잘못된 와인 문화를 확산시킬 우려도 크다, 그런 말씀이시죠?

    김: 기자답게 요약을 잘 하시네요. 오늘 이 스페인 와인 캄포 비에호를 다 마시고 나면 제 우려가 실감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와인은 앞으로도 ‘신의 물방울’에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훌륭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와인 초보자가 사서 즐기기에는 손색없는 와인이죠.

    이: 실감나는 얘기네요. 그나저나 우리나라의 아기 타다시나 우리나라 판 ‘신의 물방울’이 탄생하기를 고대하면서 잔을 부딪치죠.

    일시: 9월 7일
    장소: 서울 중구 신문로 이탈리아 식당 ‘베니니’
    와인: 스페인 리오하산 캄포 비에호 리제르바(Rioja Campo Viejo Reserva) 1999년

    이여영 기자

     

    출처 : Lifestyle Report
    글쓴이 : ㅇㅕㅇㅕㅇ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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