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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몬도비노 - 포도주 전쟁 (Mondovino, 2004)
    와인이야기(잡록) 2009. 2. 12. 14:29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와인은 마시는 단순한 음료 이상이다. 단 하 루도 프랑스인들은 와인 없이 살 수 없으며, 그 결과 포도주는 이들의 피와 뼈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와인은 프 랑스를 포함한 전 서양 문명의 현재가 있게 한 상징이다. 조나단 노시터 감독의 < 몬도비노>는 이처럼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포도주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말한다 .

    미국의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와 이태리의 피렌체, 프랑스의 보르도 등 대표적인 3 대륙의 와인 생산지를 따라가며 <몬도비노>는 소규모의 와인 생산자들과 대규모 와인 산업체의 사장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한다. (이는 <로저와 나 Roger & Me>에서 GM의 사장인 로저 스미스를 만나려는 마이클 무어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제목 인 ‘몬도비노 Mondovino’는 1966년 가난한 이태리계 이민자인 로버트 몬다비에 의해 창설된 와인 회사 이름. 30년이 지난 현재 몬도비노는 미국 나파와 칠레, 오 스트레일리아, 이태리 투스카니 등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규모 생산업체를 소유한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하여, 와인 사업의 현대화를 이끌고 있다. 조나단 노시터는 와인 산업의 현대화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몬노비노 회사 관계자들의 인터뷰 중간 중간에 와인 생산을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 (vocation)’으로 여기는 프랑스의 꼬장꼬장한 노인 에메 귀베르의 인터뷰를 의도 적으로 끼워넣는다. 그는 세련된 양복차림의 와인 생산업자의 그럴듯한 수사보다 는 프랑스 노인의 촌스러운 장신 정신에 한 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 노시터는 지난 1997년 선댄스국제영화제에서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선데 이>로 심사위원 대상과 각본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미국 독립 영화의 기린아로 떠 오른 신성이다.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등의 해외통신원이었던 아버지 덕분 에 조나단 노시터는 소년 시절의 대부분을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에서 보냈다. 2 시간 40분 동안 와인 생산업자의 인터뷰로 일관하는 <몬도비노>는 조나단 노시터 가 얼마나 프랑스 문화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럽인들에게 <몬도비 노>는 ‘미국인이 만든 유럽문화 예찬가’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재의 영화로 비 춰질 수 있다. 원래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몬도비노>는 영화제 아 트디렉터인 티에리 프레모의 강력 추천으로 경쟁 부문으로 상향 조정되는 행운을 얻었으며, 주로 프랑스 매체로 구성된 필름 프랑세(Film Français)의 별 점 평가에서도 최고점인 황금종려상 1개와 3점 8개 등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와 인이 음료 이상은 아닌 외국인들에게 <몬도비노>를 보는 2시간 40분의 경험은 참 을 수 없는 지루함의 연속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평가는 그 와인의 가격과 판매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가 극찬을 하면 무명의 와인도 한순간에 인기 절정의 와인이 되며, 그의 ‘실망스럽다’는 한 마디에 샤또 무똥 롯췰드 같은 거대규모 와인 기업도 매출상의 타격을 입는다. 그 때문에 ‘와인 종주국’ 프랑스의 많은 와이너리들이 한 명의 미국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기 고유의 개성을 포기한다. 떼루아르(토양)의 특성을 죽이고, 자기만의 방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로버트 파커가 ‘맛있다’고 평하는 방향의 와인을 만든다.

    한 사람의 취향이 맛있는 와인의 기준이 되어가는 과정엔 그것을 산업적 가치로 환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로버트 몬다비라는 미국의 와인 재벌은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에 대규모 와이너리를 갖추고 양질의 와인을 만든다. 미셸 롤랑이라는 와인 컨설턴트는 세계 곳곳의 중소규모 와이너리들을 돌아다니며 자본과 첨단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기준에 맞춰 와인을 만들게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이 만드는 와인은 로버트 파커의 입맛에 딱 맞는 와인이다. (다만, 로버트 몬다비가 가지지 못한 것은 프랑스와 같은 떼루아르의 다양한 특성이라면, 그가 가진 것은 와인의 진함을 더하는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훌륭한 기후, 그리고 매년 새 오크통을 살 수 있는 자본력이다.) 떼루아르의 특성을 무시할 정도로 진한 맛과, 매년 새 오크통을 사용해 만드는 바닐라 향이 로버트 파커가 생각하는 맛있는 와인의 요건이 되면서 세계의 와인들이 고유의 개성을 잃고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 와인의 ‘나파(밸리)화’ 라고도 불리는 바로 이것이 현재 와인의 세계화 추세다.

    문화로서의 와인이 점차 규모있는 산업이 되어가며, 대중화와 획일화의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것에 반대하며 전통과 고유성을 지키고자 하는 프랑스의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있고, 그들의 와인을 점차 ‘맛있다’는 기준에서 벗어난다며 외면하는 소비자들이 또 있다. 편집에 재편집을 거쳐 농축된 135분짜리 영화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담담한 어투로 일관되게 제공하며 이러한 사실을 뇌리에 천천히 스며들게 한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와인 업계의 저명 인사들을 만나고,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농가들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편집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집어내고, 가끔씩 짧은 코멘트를 툭 던지는 것으로 영화는 완성된다.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감독의 보여주기 방식 덕분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각 다른 의미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세력과 전통을 유지하려는 세력 양 측에 대한 감독의 가치판단은 중립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같은 포도로 만들었을지라도 결국은 각각의 개성을 나타내는 와인처럼 영화 <몬도비노>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와인 문화가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담아낸 이 영화를 3년간 충분히 솎아내고 발효시킨 감독의 방식, 그 은근함이 마음에 든다.
    몬도비노 Mondovino (2004) / DJUNA

    출처 :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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