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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사랑한 에게해의 낙원…그리스.. | 퍼온글 2006/03/02 14:46 http://blog.naver.com/shkim5555/30002382561 출처 : 동성 주막(東城 酒幕)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사랑한 에게해의 낙원…그리스 낙소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를 도와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무사히 아테네로 돌아가게 만든 일등공신 아리아드네는 미노스 왕국(에게해 남쪽 크레타 섬 소재)의 공주였다. 사랑을 위해 아버지(미노스 왕)의 뜻을 어겨가면서 테세우스를 구한 그녀는 그 후 과연 테세우스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했다. 테세우스와 함께 낙소스 섬까지 갔다가 그만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디오니소스가 구해주었고 결혼까지 하여 잘 살았다는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를 ‘미노스 궁전’이란 제목의 소설로 풀어쓴 카잔차키스가 “벅찬 감미로움과 고요함을 지녔다. 잔잔한 바다 가운데 어디에나 멜론과 복숭아와 무화과 더미가 쌓여있다”고 표현한 낙소스(Naxos)는 크레타 바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 낙소스의 최대 마을 호라. 파란 바다와 백색의 집, 오직 이 두 가지 색깔과 형상이 존재할 뿐이다. 집집마다 진열장 갖추고 장사
밝고 넓은 큰 길을 벗어나 골목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두어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어둡고, 계단이 많은 길이 고작인데 집집마다 작지만 예쁜 진열장을 꾸며놓았다. 한 평의 공간이라도 놀리면 뭐하겠냐는 식으로. 소꿉장난하는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 것 같은 아기자기한 것들을 펴놓은 가게가 한 둘이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와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예물로 일곱 개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받았다. 둘은 낙소스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나 아리아드네는 인간이었기에 늙어 세상을 떠났다. 디오니소스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결혼 선물로 주었던 왕관을 하늘 나라로 던져 아름다운 별자리도 만들었다고 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와의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신의 사랑을 얻었다. 이성을 상징하는 아테네 출신의 테세우스 대신 낙소스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 신을.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자 연극의 신이다.
그리스에서 술은 포도주로 대표되고 포도주는 일상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여겨진다. 일상은 노동과 규칙과 이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모든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또 취하고자 한다. 우리가 제상에 술을 올리는 것도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죽은 혼령과의 만남을 위해서이듯이 그리스인들도 제사 때 술을 바쳤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에게도 술을 바쳐 축제를 벌였다. 지혜의 여신 아테네에 못지 않은 애정을 디오니소스에게 쏟았다. 조화와 균형의 가치를 남달리 존중했던 민족답게.
▲ 낙소스에는 디오니소스의 고향답게 그의 이름을 내건 포도주가 생산된다. 바쿠스는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표현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디오니소스의 고향이기 때문인지, 낙소스에는 포도주 가게가 많다. ‘바쿠스’(디오니소스의 로마식 명칭)와 ‘아리아드네’란 브랜드를 내건 포도주가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화를 철저히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어 곱게 봐주지 말아야 하는데 오히려 반갑게 다가온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이 섬을 찾았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물 대신 마시는 술이다. 포도주가 생산되는 지역은 물이 좋지 않거나 귀한 편이다. 포도는 그런 척박한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는 물을 끌어올려 열매를 맺는데, 인간은 그걸로 포도주를 담근다. 포도주는 오직 포도의 즙으로만 만든다. 다른 술에는 물이 얼마간 들어가지만 포도주는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이 귀해서도 그렇거니와 질도 좋지 않은데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1㎏의 포도는 750㎖짜리 포도주 한 병을 만들어낸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포도나무가 만든 ‘물’을 이렇게 포도주의 형태로 섭취한다. 우리가 밥 먹을 때 물을 마시는 것처럼 그들은 포도주를 마신다. 그러니 그들이 한 해 마시는 포도주의 양은 어느 정도겠으며 알코올 섭취량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비틀거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분산해서 마시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느림의 술’인 것이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었다. 섬인 데다 큰 건물도 없어 그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다녀야 했는데, 방파제를 지나 작은 섬으로 가는 것이 특히 힘들었다.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곤 했던 것이다.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지나기 위해서는 타이밍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곳으로 가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거기에 ‘바쿠스 신전의 문’ 또는 ‘아리아드네의 욕탕’이라 불리는 유적이 있어서다. 디오니소스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어서인데 사각형 대리석 문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 뒤로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곳이라는 사각의 욕탕 터 또한 남아 있다. 그들 남녀가 즐기는 모습을 그리다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구한 곳이 이 작은 섬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이 디오니소스 신전이라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등을 생각하고 있을 때 파도가 거기까지 튀어 올랐다.
글ㆍ사진=권삼윤 역사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