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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신의 물방울
    와인이야기(잡록) 2007. 7. 23. 11:34

     

     

    왜 음악계 종사자들은 <신의 물방울>이 와인을 소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고민하지 못하는 걸까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인기다. 술자리만 가도 “요즘 <신의 물방울> 봤냐?”라는 말을 제법 듣는다. 이 만화 때문에 5년 만에 처음 책방에 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작품에 어떤 와인이 등장하면 시가가 두세 배씩 오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인기를 넘어선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그동안 와인을 보급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관련된 책도 적지 않게 출간됐다. 그러나 <신의 물방울>만큼 와인 붐을 만들어낸 사례는 없다.

     

     

    지식이 아닌, 문화를 즐기는 법을 알리다

     

     


    △ 만화 <신의 물방울>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와인을 즐긴다는 것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법 때문이다. 음악인들도 다양한 음악을 대중이 즐기기 좋은 방식으로 소개할 수 없을까.

    작품의 스토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소개되는 와인들은 대부분 가격도 만만치 않고 그나마 구하기 힘든 것 투성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의 물방울>을 읽고 와인숍으로 달려가 주브레 샹베르탕 오 비레, 몽 페라 2001, 본 로마네 레 보몽을 찾는다.

     

     

     왜 그럴까. 그동안 와인은 접근성이 지극히 낮은 문화였다. 산지와 제조연도, 제조자와 양조장, 심지어 포도밭까지 일일이 따져서 즐겨야 했기에 이 복잡한 고유명사의 세계 앞에서 주눅 들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아니 즐길 줄 안다는 것은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기후와 환경 차이를 안다는 것이며, 어느 양조업자가 권위가 있는지를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연도의 포도 작황과 품질을 머릿속에 훤히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게 그동안 와인 문화에 대한 상식이었고 각종 와인 소개 책자에서 주장해온 불변의 진리였다.

     

     

     

    하지만 <신의 물방울>이 이토록 흥행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고유명사 때문이 아니다. 바로 와인을 즐긴다는 것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이다.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실 때 떠오르는 각종 풍경들 말이다. 고작 술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모나리자가 미소를 짓고, 신화 속의 뮤즈들이 입을 맞춘다니, 이 얼마나 고결한 판타지란 말인가. 이런 판타지는 그동안 와인의 세계 앞에 드리워 있던 장벽을 부순다. 누구나 와인을 마시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고, 단순한 지식이 아닌 와인 그 자체와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유혹을 심어준다.

     

     

    지식을 통한 분석이 아닌, 문화를 즐기는 법을 알렸다는 게 <신의 물방울>의 공적이라면 공적일 것이다. 즉, 이 작품은 ‘마시고 좋으면 그만’에서 한 걸음 더 나가 그 ‘좋음’을 적극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부추긴다. 그것은 곧 취향의 계발로 이어진다. 집중해서 와인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자기가 선호하는 맛과 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비슷한 계열을 찾아나서다 보면 어렵던 고유명사들은 자연스레 체화된다. 그제야 알 수 있게 된다. 그 어렵던 이름과 숫자들이 모두 결국은 맛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부가적 요소일 뿐이었다는 것을.

     

     

     

    음악도 마찬가지다. 어떤 음악이든 만드는 사람의 입장은 다 똑같다. 자신의 내면을 소리로 표현해서 듣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다. 누구도 그런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지는 않는다. 수학 문제를 풀듯 공식에 대입해서 작곡을 하지는 않는다. 설령 그런 공식을 사용한다 해도 그것은 내면의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문외한들에게 수많은 장르와 계보는 음악에 입문하는 데 벽이 되곤 한다. 혹시라도 고수를 만나 추천이라도 받을라 치면 알 수 없는 소리만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리고 ‘넌 이것도 모르니’ 하는 식의 미묘한 무시도 거부감이 든다. 고작 소리일 뿐인데 왜 이리 필요한 지식들이 많은 것인가.

     

     

    하지만 그런 지식들은 종종 음악의 본질을 가린다. 뮤지션들의 예술적 욕망과 청중 사이에 뚫고 지나가기 힘든 안개를 뿌린다. 소통의 장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가볍게 무시하면 그뿐이다. 와인을 마시면서 풍경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신의 물방울>이 알려준 덕목이다.

     

    음악을 들을 때도 집중해서 그 느낌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장르와 계보의 안개는 곧 걷히기 마련이다. 그런 음악적 경험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취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질감의 소리, 어떤 특성의 보컬 등등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래방에서 부르기 좋고, 휴대전화 벨소리로 저장해놓기 좋은 음악 이상의 다양한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장르와 계보는 그 길을 걷기 위한 이정표일 뿐, 길 자체는 아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전혀, 주눅 들 필요가 없는 문제다.

     

     

     

    발라드와 댄스에 지나치게 편중된 이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06 음악산업백서>에 의하면 한국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로 발라드가 66.3%를, 댄스가 26.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듣기 편한 음악들이다. 음악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르다. 어느 나라나 두 장르의 비율이 높은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다.

     

     

    한국 대중의 질이 낮기 때문이라고 은근히 멸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다양한 음악을, 일반 대중이 즐기기 좋은 방법을 제시하면서 소개하지 못하는 업계 종사자들의 잘못은 없을까. 알 수 없는 음악 용어들이 난무하고 장르와 계보적 지식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개가 대중을 음악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린 것은 아닐까. 결국 음악이란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출처 : 10기 전원학교
    글쓴이 : 인터자인조현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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