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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인제 원대리 삼층석탑
    사진&수채화 2011. 12. 5. 22:28

     

    446번 도로에서 다시 원위치로 나와 44번 도로로 바꾸어 탔다. 옛날과 달라 인제로 가는 길, 한계령을 지나는 길이 홍천에서부터 잘 나 있다. 옛날 그 험한 구도로로 아들을 태워서 오색으로 설악동으로 간 일을 이 놈은 기억할 것인가? 거기서 지낸 며칠은 기억할지 몰라도 길이 어땠는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소양호에는 제법 물이 많이 차 있다. 나는 옛날 이 길이 어땠으며, 전두환 전대통령이 백담사에 있을 때 면회를 갔다 오던 버스가 이 다리에서 떨어져 어떤 사고가 났으며, 저 고개가 군축고개인데 저 고개를 넘을 때는 어땠으며...등을 이야기하였다.

     

    먼저 인제군청엘 들렀다. 관광지도도 한 장 챙기고 상동리며 원대리를 묻는데 근무하는 여성직원은 원대리 석탑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하기야 아무나 다 안다면 찾아가는 내가 재미가 없을 것이다.

    먼저 백련정사를 찾기로 했는데 문제는... 내가 검색하고 찾은 지도에는 백련정사가 원대리 가는 중간, 소양강을 건너 산 속에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길은 역시 강원도답게 좁은 협곡으로 들어가면서 높고 낮고, 꾸불꾸불, 운전연습하기는 딱 좋은 곳이다. 래프팅하는 협곡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니 경치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오른 쪽 높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너무 왔다 싶었는데 어쨌거나 강을 넘어가는 다리를 못 보았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단지 지도가 잘 못 되었거나 내가 잘 못 검색한 것일 뿐...

    이왕 많이 지나왔으니 원대리부터 가자고 작정했다. 사실 거기는 은근히 걱정되는 곳인데...

    아무도 찾아가 보았다는 글이 올라오지도 않은 곳인데...내가 아는 어슬픈 정보로 어떻게 거길 찾는담... 거리는 어떨 것이며...

    일단 한석산전적비를 지나고 나니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다리 하나가 보인다. 그곳이 원대삼거리인 모양이다. 우회전해서 다리를 건너고, 다시 조금 더 가니 마을이 나타나고 가게가 조금 많은 곳이 원대리였다.

     

      

     

    왼쪽에 래프팅연수원인가가 보이는데 건물이 빤뜻했다.  혹시 절골이라는 마을 간판이라도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며 올라가는데 너무 왔다 싶어서 다시 내려갔다. 절골로 들어가는 길목인듯한 곳을 어림짐작으로 찍어서 개울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들어간 곳은 다시 무슨 연수원 정도를 짓는 공사장이었다. 다시 빠꾸...

    원대리에서 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절골을 물었다. 황토로 만든 집, 식당인가 팬션인가가 한 채 있는데 그 맞은 편 골짜기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아까 너무 올라왔다고 차를 돌린 바로 그 곳이었다.

    개울을 건너는 좁은 다리가 나있고 바로 언덕받이로 올라가는데 언덕 위에는 집이 두어 채 있다. 좀 더 가니 제법 번듯한 농가가 한 채 있는데 거기가 마지막 집인가 보았다. 

     

    길은 온통 돌바닥으로 겨우 경운기나 찝차가 다닐 만했다. 거기  집주인인듯한 사람이 차가 올라갈 수도 있고 주차장도 있으며 그 길로 주욱 올라가라고 하였지만 조금 가다가 이내 차는 포기하고 말았다. 찝차라면 모를까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는 것을...

    울퉁불퉁한 돌길을 살금살금 가다가 바닥이 닿고 하니 기사는 볼이 미어터진다. 할 수 없이 차를 돌릴만한 곳에서 다시 내려가라고 하고 나만 혼자서 올라갔다.

    아아,,괴로운 내 인생이여...

    부처님이 있다면 탑을 찾아서 이런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사서 하는 나에게 뭔가 큰 선물이라도 주어야 하거늘...

     

    길은 외길로 잘 나 있었고 그리 높게 쳐올리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허기가 질 시각, 그리고 어제 이천에서 헤매느라 체력을 소모했고...다리가 뻐근하게 아픈 것이 영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도대체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더욱 난감했다. 내가 무슨 리빙스턴인가...

     

    고도는 점점 높아지는데 계곡은 온통 군데군데 사방댐을 설치하였다. 어느 골짜기고 사방댐을 만들어 놓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전화는 이미 불통이다. 또 연락도 되지 않는 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다.

     

        

     

    고도를 높였으니 멀리 저 높은 산이 이제 내 눈과 비슷한 위치이다. 한참을 올라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아직 얼마 안 올라 온 곳이다.

    등산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것, 저 구비만 일단 돌고 보자...저기도 아니면 되돌아 간다...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없어도 그래? 그럼 한 구비만 더 돌아본다...이런 식이 되어야 비로소 한 걸음씩, 한 구비씩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힘도 들고, 지겹기도 하고 3-4km는 올라온 것 같은데 저 멀리서 무슨 푯말이 보이는 것이 인간의 흔적 같았다.

    반가워서 다가가 보니 과연 거기는 밭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에 개울 건너에서 중늙은 여성이 혼자서 밭일을 하고 있다.

    오른 쪽에는 콘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고 갤로프인지 뭔지 비슷한 차도 한 대 올라와 서 있다.

     

    개울물 소리 떄문에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말을 주고 받기는 어려웠다. 다만 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조 위라는 것만 알아들었다. 탑은 거의 산 꼭대기 부근에 있는 셈이었다. 다시 200미터 정도 더 올라가니 거기에 탑이 보인다. 쇠창살로 가두어 놓았다.

     

        

              

    다행히 창살 문은 열려 있었다. 이 터가 바로 절터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주변에 기와파편이 있고 아마 신도들이 그것을 주워서 지붕돌에 올려놓은 듯 기와 파편들이 많이 얹혀져 있다.

    탑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보기에 소박한, 투박한, 굶주리고 소외된 강원도 영서지방의 특색을 그대로 간직한 듯이 보였다.

     

     

    몇 번을 옮겨 다니느라고 사연이 많았다고 하더니 기단은 시멘트로 붙박이를 해 놓았다. 이제는 아무도 못 가져가게 한 것일 것이다.

    탑은 고려시대 영서지방의 영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1층 기단에 3층의 모습인데 상륜부 외에 나머지 부분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 몸돌만 나타나 있는데 각 면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다. 갑석은 고려시대 영서지방의 특징이 드러나는 형태, 두꺼우면서 부연쪽을 오목하게 처리하였고 지붕은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탑신을 받치기 위한 2단의 괴임을 새겼고 1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반듯하게 올렸다. 1층지붕돌과 2층몸돌이 하나로,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이 하나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 영서지방의 특징적 양식이다.

    지붕돌의 하단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직선에서 약간 곡선을 띠었으며 마모가 심하지만 반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의 두께가 있어서 낙수면은 급하게 떨어지다가 마지막에 수평으로 이어진다.

     

    지붕돌의 너비에 비해서 두께가 있어서 둔중하지만 아담한 형태인데 이런 모습은 지붕돌과 몸돌을 일체형으로 하는 탑들의 특징일 수밖에 없다. 즉 지붕돌과 몸돌을 일체형으로 제작하자니 몸돌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이고 낮아지니 일체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갑둔리의 오층석탑은 영서지방의 이러한 특징적 요소들이 무시된 복원이었던 셈이다. 

     

    이 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1층 몸돌의 앞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불상은 돋을새김으로 조성되었는데 다른 부분의 마모에 비하면 상태가 아주 좋아서 손가락까지 온전하게 원형을 잘 보유하고 있었다.

     

         

     

     

    조각이 아주 섬세해서 광배와 얼굴표정까지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까지 고행을 하였더니 비로소 이런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불상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다시 길을 내려오자니 컨테이너 박스 앞에 스님이 서계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 탑을 찾아와서 다시 복원한 것이 1974이라고 하는데 그 때 1층몸돌의 불상이 남쪽으로 갈 것을 동쪽으로 잘 못 세웠다는 것이다.

     

    도난 당하는 탑들은 대체로 특징이 있다. 일차적으로 작은 것, 이차적으로는 차량이 들어갈  만한 길이 있는 곳이다. 양덕원 탑도 그런 상태가 아니었던가... 괘석리도 차만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든지 업고 갈만한 사이즈이다. 그러니 시멘트로 저렇게 발을 묶어놓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스님은 이 뒷산이 옛날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었고 6.25 때는 국군과 인민군의 접경이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마의태자가 마지막에 여기에 계셨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마의태자는 천 년이 넘도록 힘없고 가난하게, 억눌려 살던 이 곳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좌절되고 나니 전설이 되고 신이 되어 아직도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음을 나는 스님의 먼 눈빛에서 볼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마의태자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으며 그의 마지막을 자신들의 가슴 속에 묻고 그들은 아직도 소중하게 그 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그 시대를 꿈꾸는 것일까???

    수천 년 동안 가슴 깊이 맺힌 한(恨)~~~

     

    일하던 여성분은 나보고 차라도 한 잔 하고 내려가라고 하였지만 느긋하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서둘러 길을 내려오는데 아들이 거의 다 올라와 있었다.

     

    내려오는 길...

    나는 마치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성취감에 젖었다.

    때가 지났지만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만 마셔도 배가 불렀다.

     

     

    소재지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6반 절골

     

    2010. 10. 16.

    머루눈

     

     

    출처 : 석탑이 보이는 풍경
    글쓴이 : 머루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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