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장한기 작. 시선의 정점 중에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
사진이 예술작품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이를 창작하는 사진가가 그 대상물이 되는 피사체에 대한 연구는 물론, 사진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창조적 기법을 적용한 판단과 아이디어로 창작에 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며, 소기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 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진은 일찍이 1839년 '루이 자끄망데 다게르( Louis Jacques Mande Daguerre)' 에 의해 발명된 후, 수 세기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뜻있는 사진가들에 의해 새로운 기법과 새로운 학설이 연구되고 적용되어 그 실용성을 증명해 보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사진영상이라는 학문과 학술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핵심매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진의 본질적인 접근과 순수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창작물에 대한 합성여부를 두고 사진에 대한 순수성의 공방이 끝이지 않고 있다.
이는 기존의 순수사진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적 경향의 사진가들과, 과학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기능의 기법을 접목시킨 변화된 모습의 창작을 지향하려는 진보주의적 경향의 사진가들의 주장이 충돌 하는데서 일어나는 대립된 형태의 양상으로, 이는 결코 논란 그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며, 그 어느 시대에서나 대두되어 왔던 문제 중 하나로써, 이러한 논란과 공방은 상호 절충과 보완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내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어 왔었다. 여기에 그 대표적인 모델을 하나 제시해보면, 1902년에 사진분리파운동을 전개하여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순수사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볼 필요성이 있다. 이 운동은 사진의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아 렌즈가 지닌 정확하고 정밀한 광학적 기능을 사진의 기본으로 다시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사진의 목적을 크게 보면 두 부류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서의 기록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표현으로서의 예술사진으로 구분하고 있다. 실용적인 기록사진은 기계적인 기록성에 근거하여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을 중시하며, 예술사진의 경우는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인간의 감정에 호소한 내면세계의 표현을 중시하는 표현 형식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분리파운동의 의의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목적의 사진의 흐름을 하나로 통합시켜 변증법적인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그의 이 같은 순수사진 운동은 사진의 예술성을 확립하는데 있었으나, 막상 그가 내세운 순수사진의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로 기록사진의 노선을 따르는 듯하였다. 그것은 그동안 예술성을 추구해온 많은 예술가들이 제약과 한계의 굴레라고 속단한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이, 오히려 사진의 독자적인 예술성의 터전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한 사진예술의 미학적 기본은 사실주의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한 이론정립에 들어갔다. 사실주의란 “어떤 대상을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해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실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차츰 고조되어 온 세계적인 추세로 전파되어 자연과학적인 입장에서 대상에 새롭게 접근하려는 예술계의 시도였다. 스티글리츠는 사진이야말로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가장 적합한 예술형식임을 간파하고, 순수사진이야말로 과학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예술적인 새로운 조짐의 첨단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이로써 그동안 혼미를 거듭해왔던 예술사진의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으며 사진은 예술로써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진의 예술적 지위는 바로 이러한 선각자들의 지속적이고 집요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스티글리츠의 사진 적 추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의 사진은 제일차세계대전을 중심으로 한 1917년을 기점으로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게 되었으며, 그 이전을 전기로 볼 수 있으며, 이때는 사진분리파운동을 중심으로 그가 표방하고 나선 순수사진 즉 사실주의 사진의 전개였으며 그 이후는 대상의 객관적인 진실파악에서 한걸음 다가서는 것으로써 현실에 은유적인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입을 시도한 시기였다. 그것이 바로 1920년대 이후부터 그의 사진인생 종반에 추진한 구름사진을 대상으로 한 '이퀴벌런트 사진미학' 이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주장한 사실주의 입장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 내면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클로즈업을 통한 대상의 극단적인 접근으로 정밀묘사를 추진하였다. 이것은 대상의 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강조함으로써 화면 밖으로 밀려난 전체를 암시하게 하여 사진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가 20세기에 현대사진의 초석을 다진 것은 사진의 눈을 통하여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의 내면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자각적인 노력은 오랫동안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진예술을 정상적인 궤도위에 올려놓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전자과학의 발달이 심화됨에 따라 사진창작 환경도 급격하게 변화 되어, 현 시대의 사진가들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선대들이 제시한 사진적 정의를 예제로 제시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진 속에 내재된 진실은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변임을 새롭게 인식시켜주고자 하는 필자의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대가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예술은 그대로 발전시키되, 진실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순수사진의 전통이야 말로 진정한 사진의 위력이며 후대에도 현실의 진실을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작품으로서 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4일 씀. 2008년 6월 19일 옮김.寫眞家 德岩 張漢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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