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정진(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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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 백지순(사진가, 포테이토 객원기자) 「먼 섬 외딴집」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풍경사진으로 전향하셨는데요… 대학교 1학년 때 사진을 처음 시작하고 졸업할 때까지 다큐멘터리보다는 풍경 쪽에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졸업 후에 <뿌리 깊은 나무>에 입사했고서 거기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게 되었죠. 강운구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곳이었고,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2년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인물 같은 것을 촬영했어요. 다큐멘터리에도 매력은 느끼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곳을 그만두고 내 자신의 작업을 시작한 거죠. 1년에 걸쳐서 어느 심마니에 대해 내 나름대로 다큐멘트를 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열화당에서 출판 제의를 받았어요. 그래서 조세희 선생에게 글을 받으려고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사진이 리얼리티보다는 감성적이니 글도 다이어리 형식으로 직접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글을 썼는데 글도 역시 감성적으로 사진과 많이 닮아있었어요. 「먼 섬 외딴집」 이라는 사진집으로 그 작업을 정리하고 나니까 한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도 마치 풍경사진 같은 느낌이었어요. 「먼 섬 외딴집」의 출판기념 전시를 하고 바로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모든 걸 자유롭고 새롭게 접근하려고 마음을 열고 갔지요. 대학 서클에서 그룹으로 다닐 때나 혼자 다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감성적인 면은 바뀌지 않았으나 방법은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을 사진의 소재로 하는 것보다 순수한 풍경 그 자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풍경, 삶이 떠나간 풍경, 사람이 출연하는 직접적인 풍경 말고 그 흔적을 느끼게 하는 은유적인 풍경… 그런 풍경을 찍는 것이 좋았어요.
지금까지는 한 번도 내가 정물을 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복식 호흡으로 명상을 하다가 방안에 있는 조그마한 신라 토기가 커다랗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찍었죠. 나는 새로운 작업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마음먹은 작업에 대해서는 빠르게 촬영하고 인화해요. 그 조그마한 신라 토기를 커다랗게 인화해 보니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Thing」의 작업이 시작된 거예요. 이제까지 나의 작업은 너무나 먼 데서 시작됐어요. 꼭 길을 떠나서야 그것을 얻었죠. 현실을 떠난 이상을 쫓는 것 같았죠. 그러다가 명상을 통해서 나의 주위의 사물과 교감하게 되었고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우선 재밌는 사물이 있으면 방 한 구석에 던져놔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물과 나와 서로 최면을 걸다가 그 사물이 나의 일부가 되면 그 때 촬영을 시작해요. 그러니까 그 동안의 풍경 작업이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Thing」은 나의 내면세계의 소리에 귀 기울인 거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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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물 작업은 사물에 그림자도 없고 배경도 없어서 공간과 시간이 마치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떤 프로세스로 작업하신 거예요? 일단 120mm로 사진을 찍어요. 물론 흰색 배경에서요. 그래도 섀도우가 생기죠. 그것을 리스 필름으로 다시 떠요. 그러면 오리지널의 부드러운 톤이 콘트라스트가 강해지죠. 그리고 다시 만든 필름의 섀도우는 일일이 지웁니다. 그렇게 해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작업을 하죠. 그리고는 한지에 ‘리퀴드라이트’나 ‘AG플러스’ 같은 감광유제를 발라서 말린 후, 확대 인화를 해요. 수세가 끝나면 동양화 배접 식으로 배접해서 말려요. 그런 후에 유제의 붓 자국이라든지 섀도우 등을 수정하죠. 선생님의 작업에서는 한지가 많이 사용되는데, 한지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나는 초등학교 때 서예를 했고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했기 때문에 한지의 맛에는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유제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종이를 써서 테스트 해봤는데 한지가 얇아서 잘 찢어지기도 하지만 그 소재와 나의 사진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죠. 내용과 형식이 잘 맞아서 한지 작업을 계속했어요. ![]() 표갤러리는 상업적인 화랑이지요? 몇 번째 전시인가요? 이번이 28번 째 개인전이예요. 그 중에 반 이상이 외국전시고요. 그리고 외국 전시는 100% 상업화랑 전시입니다. 전업 작가는 작품을 팔아서 생활해야 되니까 작품은 팔아야 하는데 작가가 직접 나서서 일일이 작품을 팔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 분야는 작가와는 다른 역할이고, 그 역할은 화랑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화랑에서 가져가는 커미션이 50%이니까, 이 화랑이 나와 잘 맞는지, 또 작품을 잘 팔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서 전시를 하죠. 이번 전시는 5월 초까지 연장하기로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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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에디션은 130호 정도의 큰 작품은 3장이고요, 작은 작품은 5장이에요. 완전히 수작업이라 에디션을 그렇게 많이 만들 수가 없어요. 실례입니다만, 선생님의 작품 가격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정진의 작품 가격은 비싸다고들 해요. 그런데 그 가격을 많이 팔기 위해 내 맘대로 올렸다, 내렸다 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미국 Pace Macgill Gallery에서 전속으로 5년간 일했었는데 그 때 작가의 역할과 화랑의 역할에 대해서 알게 됐죠. 큐레이터와 작품에 대한 가격을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서 한 번 정하고 나면 그 이하로 싸게 팔기는 어려워요. 미국의 어떤 미술관에서 소장을 한다고 해도 그 가격은 마찬가지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술관이나 국가기관에서 소장한다고 하면 싸게 팔 것을 요구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 미국 시장의 요구입니다. 이정진의 작품이 뉴욕에서는 얼만데 한국 가니까 더 싸더라… 이렇게 되면 작가로서는 신뢰감을 잃는 거죠.
그는 스스로 마음속의 스승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물음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그가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